K와 나

<제7회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 입선>

K와 나

엄성민

부하의 사망통지서를 받았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뇌손상. 종이 위에 건조하게 적힌 사인(死因) 뒤로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은 K의 시체가 보였다. K는 죽었다.

“부하 관리 똑바로 못해!”

대대장의 호통이 적막한 군병원을 울렸다. 고개를 떨궜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부하라지만K는 58세의 원사이고 나는 28세의 중위 아닌가. 소대장과 부하라 해도 내가 그의 갑작스런죽음까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 다음 달에 진급심사다.”

“알고 있습니다.”

“빨리 처리하자. 뒷말 나오지 않게.”

저벅저벅 군화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대대장의 등을 보니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군병원의 복도가 까마득하게 길어 보였다.

“소대장님, 빨리 내려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틀 전, 나는 서울에 있었다. 양재동의 어느 행사장. 전역 예정 장교를 대상으로 하는 취업설명회를 듣고 있었다. K가 아프다는 병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는 툴툴거리며 광주행 기차를탔다. 그때만 해도 그의 죽음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휴가 받은 사람 가만히 두지를 않는구나, 구시렁거리며 광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소대로 돌아오니 소대원들은 이미 상황 파악을 끝내고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짐짓 군기 잡힌 태도였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K를 안 봐도 된다는 묘한 안도감이 퍼져있었다. 전라남도 광주. 공군 비행단. 헌병대. 총원 일곱 명의 작은 외곽 소대. 이곳이 K와 나의 소대였다. 간부 집무실과 병사 내무실, 딱 2개의 공간뿐인 소대. 집무실로 들어와 책상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소대장의 자리이지만 K는 이곳을 차지하고 비켜주지 않았었다. 전역이 3개월 남은고참 원사. 그는 이 자리에 앉아 자신의 노후 준비를 하곤 했다. 우리는 첫 만남부터 악연이었다.

2년 6개월 전. 나는 신임소위로 이 소대에 왔었다. 초임장교의 쓸데없는 패기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나는 소대원 일곱 명을 도열시켜 놓고 준비해온 취임사를 읽었다.
“본소대장은서울에서수학하고기본군사훈련을우수한성적으로수료한뒤…”

그 때, 흰색 런닝샤쓰 차림에 벨트는 풀고 군화를 구겨 신은 한 노인이 슥 나타났다. 물 주러가는 길이었는지 손에는 조리개가 들려있었다. 나는 ‘부대 안에 왜 민간인이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 민간인이 나와 함께 일할 선임부사관, K였다.

“…누구여?”

오히려 그가 놀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진한 남도 사투리가 왜 여기 왔냐고 묻는 뉘앙스였다. 당황한 나는

“저 여기 소대장으로 왔는데요.”

라고 멍청한 대답을 해버렸다.

“뭐? 소대장!?”

마치 이 소대에는 소대장이 있으면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K는 조리개를 던지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마치 관상쟁이처럼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오랜 관찰 끝에, 그는 결론을 내렸다.

“…군 생활 못 할 것 같아.”

도열한 일곱 중 누군가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장교훈련을 받을 때, 조교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자대로 가면 초임장교를 무시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럴 때 초반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단호한 모습이라. 나는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심정으로 뒤돌아 가는 K의 등에 대고 단호하게 소리 질렀다.

“야 임마! 너 뭐라고 그랬어!”

전쟁의 시작이었다.

K는 고수였다. 군 생활 30년의 짬밥은 이제 막 부임한 내가 당해낼 수준이 아니었다. 일단그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집무실에 하나 있는 책상을 차지하고 비키지 않았다. 무슨 책을보는지 출근하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책만 읽었다. 그리고 병사들을 휘어잡았다. 책상에앉아 고함을 빽빽 지르며 이상한 일을 시켰다. 칼을 갈아라, 풀을 뽑아라, 쉴 새 없이 일을 시켜 한시라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연히 나는 앉아 있을 곳도, 부릴 병사도 없어 붕 뜨게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최고참 병장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저 K원사는 어떤 사람이냐고. 병장은나에게 K에게 대해 알려주었다. 10년 째 이 소대에만 머물고 있는 간부이자 대대에서 아무도못 건드리는 최고참 원사라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작은 소대는 K의 왕국이었음을. 그렇게 나의 소위 1년차는 K와의 냉전으로 채워졌다. 중위를 달 때 까지 K와 나는 한 마디도하지 않았다. 내가 보는 것은 오직 K의 등이었다. 그는 내가 집무실에 들어가면 일부러 휙 등을 돌려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 남아 있는 3년의 복무기간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K의 등은 없다. 나는 그가 앉던 자리에 앉아 보았다. 그가 읽던 책. 쓰던 펜. 먹던 약. 먼지 하나 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 앞으로의 장례 절차를 생각했다.

* *

“아내 분의 서명이 필요한데요.”

다음 날. 대대본부. 행정부사관이 말했다. K가 죽었지만 대대는 조용했다. 누구 하나 그의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K는 그만큼 철저한 외골수였다. 행정부사관은 유족이 혹시라도 부대에 소송을 걸 수 있으니 사망진단서에 보호자의 서명을 받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사가 생기지 않도록 서명을 받아놓으라는 것이다.

“제가요?”

그럼 누가 가냐고 묻는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빨리 서명이나 받아오세요.’ 사망진단서는 그렇게 내 손에 쥐어졌다.

소대로 왔다. 소대 앞에는 K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검은색 구형 그랜저. K는 단장님과똑같은 차를 탔다. 사람들은 K의 차가 지나갈 때 마다 단장님이 지나가는 줄로 알고 경례를했다. 어쩌다 대대에 들릴 때에는 대대장이 뛰어 나와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K는 킬킬거리며 웃곤 했다. 일종의 악취미였다.

나는 K의 차를 끌고 부대를 나왔다. 아내를 만나 사망진단서에 서명을 받고 차까지 주고 올요량이었다. 검은 그랜저가 부대 정문을 통과하자 초병들이 큰소리로 필승 구호를 외쳤다.

광주 시내. 행정부사관이 준 주소지로 차를 몰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는 K를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그 때 딱 한 번, K가 사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대대 회식 때였나. 회식이라고는 절대 오는 일이 없던 K가 웬일인지 회식에 참여했던 날이었다. 모두들 K를 싫어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이 K는 모두를 싫어했다. 그런 K가 회식에 와서 술을 진탕 마신 날이었다. 그날 K는 중대장에게 쌍욕을 했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 그런 K를 끌고 나와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풍암지구의 한 동짜리 아파트. K가 산다는 곳. 그 날 K는 문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나를한사코 뿌리치고 혼자 비틀비틀 걸어 들어갔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 여자가 나왔다. 그녀를 보니 내가 유족을 만나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무슨 일이냐 묻는 그녀에게, 나는 그의 죽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군께서, 어제 부대에서,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나는 최대한 낮고 송구한 목소리로 K의 죽음에 대한 경위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죄송스럽게 사망진단서를 내밀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내가 아니에요.”

한 동짜리 아파트 앞에는 지난주에 내린 첫 눈이 아직까지 쌓여 있었다. 나는 이 눈을 K와함께 맞았었다.

“소대장! 손가락이 안 펴져!”

첫 눈 오던 날, K는 특유의 반말 투의 거친 목소리로 자신의 굽어진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병원에 가시던지요.”

그렇게 예사스럽지 않게 대답한 것이 불과 일주일 전. 이제 K는 없고 그의 사망통지서만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아내라고 생각하던 여자는 K의 내연녀였다.

다시 K의 차에 탔다. 머리가 아파왔다. K의 가족이라. 나는 기억을 더듬어 K와의 일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K와 만난 지 1년이 지나던 날. 나는 K와 화해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병사 내무실에 쪼그려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모양 빠지는 군 생활을 지속하기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힘들었던 것은 K가 나에게 보이는 이상한 호기심이었다. K는 처음 몇 달 동안은 나를 무시하더니 그 후부터는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은밀한 감시였다. 자신의 왕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성주마냥 항상 실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곤 했다. 당직 근무를 서고 내무실에서 잠깐눈이라도 붙이면, K는 슬쩍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면 바로 앞에 K의 얼굴이 있었다. 놀라 기겁하며 일어나면 그는 다시 자신의 집무실로 슥 들어갔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K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러다가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일단 집무실로 들어갔다. 책을 보고 있던 K는 나를 보더니 의자를 획 돌려 앉았다. 도대체저 사람은 하루 종일 무슨 책을 보는걸까? 나는 곁눈질로 K의 품속에 있는 두꺼운 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그 책은 ‘대기환경산업기사’라는 기사 자격증 수험서였다. 그리고 K가하루 종일 읽던 내용은 제법 어려워 보이는 화학식이었다. 대충 보니 K는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뒷면 답안지의 내용을 옮겨 적고 하루 종일 달달 외우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화학을 썩 잘하진 못했지만 간단한 화학식은 풀어줄 수 있었다.

“그거 반응 전과 반응 후만 알면 되는데…”

내가 흘린 말에 K는 반응을 보였다.

“…소대장 이거 풀 수 있어?”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 나는 슬쩍 책상으로 다가가 그의 노트에 화학식을 풀기 시작했다. 이문제풀이는 보통의 문제풀이가 아니었다. 내가 당신의 공부를 방해할 의사가 없다는 정치적제스처였다. 나를 바라보는 K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도 나의 의도를 파악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냉전은 끝났다.

평화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내가 K와 말을 섞자 병사들도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K는 소대창고에 숨겨두었던 책상 하나를 가져오라 시켜서 집무실에 놔주었다. 작은 집무실에 책상 2개가 들어가니 K와 나는 거의 등을 맞대다시피 있어야 했다. 그래도 병사 내무실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K의 수다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말문이 트인 K는 하루 종일 떠들어 댔다. 나는 독거노인의 말동무라도 된 듯, 그가 쏟아내는 이야기를들어주었다.

‘소대장!’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몇 시간씩 이어졌다. 나는업무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K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대기환경산업기사 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단 1초라도 업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2인분의 일을 해야만 했다.

수다의 주된 내용은 자랑이었다. 절반은 자기 자신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들에 대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 당시 연금복권이라는 것이 막 출시되었다. 당첨되면 500만원씩 20년을 준다는 복권이었다. 하루는 K가 출근하자마자 헐레벌떡 나를 찾더니 이렇게 말했다.

“소대장! 소대장! 나 연금복권 맞았어!”

“정말이요!?”

“내가 전역하면 나라에서 죽을 때 까지 연금 주니까 그게 복권이지.”

그리고는 혼자 킬킬킬 웃었다. ‘소대장은 그런 복권 맞아본 적 없지?’ 하며 약 오르지? 하는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나는 저런 사람에게 주는 연금이야 말로 세금 낭비라 생각했다. 호봉제는 인간을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최악의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호봉으로K는 나보다 3배 더 많은 월급을 받았고 그 돈을 받고 하루 종일 대기환경산업기사 자격증 공부를 했다. 냉전이 끝난 것은 좋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 마다 심사가 뒤틀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 자랑이 끝나면 아들 자랑 시간이 돌아왔다.

“소대장. 혹시 시내에 원룸방 가격이 얼마 하는지 아는가?”

“글쎄요. 방마다 다를 텐데. 왜요?”

“아니 그냥… 우리 아들이 기아자동차에 자동차 디자이너로 취직을 했다는디… 이 녀석 방을하나 잡아주어야 할 것인디… 근디 우리 소대장은 전역하고 취업이나 할랑가? 요즘 취업되기가 그렇게 어렵담서?”

그리고는 은근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공군장교가 취업 잘 된다는 것은 옛날이야기다, 자격증을 따야 한다, 나를 봐라 이렇게 나이 먹고도 자기계발을 하지 않느냐? 나는 K가 그렇게 잔소리를 할 때 마다 한 귀로 듣고 흘리곤 했다. K의 잔소리는 취업걱정에서 시작하여 ‘결혼은언제 할래?’로 이어지곤 했다. 내 부모도 아니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K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K를 봤을 때 까지, 그러니까 훈련을 마치고 K와 함께 첫 눈을 맞던 그 날까지. K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아들이 있었다. K와의 기억을 더듬다가 그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기아자동차 디자이너라고 했었다.

차를 몰아 광주 시내의 기아자동차 공장으로 향했다. 군복 입은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인사담당자를 찾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자동차 디자이너 김OO씨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디자이너는 없는데요.”

“그럴 리가요. 자동차 디자이너 김OO씨요.”

인사담당자는 PC로 직원 명부를 검색했다. K의 아들을 찾은 걸까? 그는 나를 슥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 분 부친께서 돌아가셔서 가족을 만나야 합니다.”

인사담당자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가 이끈 곳은 생산라인이었다. 조립공들이 벨트를따라 움직이는 차체를 조립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전기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인사담당자의 발길이 멈춘 곳에, K를 닮은 건장한 사내가 자동차 범퍼를 붙이고 있었다. K의 아들이었다. 나는 아버지 일 때문에 왔다고 말을 건넸지만 그는 조립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벨트가 계속해서 움직여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드릴 소리를 뚫고 K가 죽었다고, 사모님의 서명이 필요한데 일단 어디 가서 얘기나 좀 하자고 소리쳤다. 그는 내 말을 자르며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와는 의절한지 오래입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공장 입구로 이른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왔다. 겨울로 들어선 날씨는 석양의 풍경까지 차갑게 얼리고 있었다. K의 검은 그랜저에 기대어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알던 K의 아내는 아내가 아니었다. 내가 알던 K의 아들은 그와 의절했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K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K와 2년 6개월을 함께 보내면서 그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K의 보호자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대대장이었다.

“싸인 받았어?”

죄송합니다, 아직… 미처 말을 맺기도 전에 욕설이 들려왔다. 대대장은 사관학교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런 그에게 고작 지방대를 나와 학사장교를 들어온 나는 영 탐탁지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대대장은 나를 두고 내 후임을 중대장으로 올렸다. 서울대 나온후임이었다. 나는 후임 밑에서 소대장 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는 사인을 받지 못하면 부대로 돌아오지 말라는 엄포를 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해는 완전히 넘어가 하늘에는 붉은 잔상만이 남았다. 석양. 그래, 언젠가 K와 함께 이런 석양을 본 적이 있었다. 중위 2년차가 되던 해. 정확히는 내가 했어야 할 중대장 자리를 후배장교가 하게 된 그 날이었다. 전입 신병 한 명이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30분 째 나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소대로 달려갔다. 소대 화장실 앞에는 병사들이 몰려 있었다. 자해를 한 것같다, 목을 맨 것 같다, 불길한 추측이 쏟아졌다. 나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찌할 줄을 몰라 허둥거렸다. 그 때, K가 나타났다. 그는 발차기 한 방으로 화장실 문을 부셔버렸다. 속에서는 신병이 벨트로 자기 목을 감고 있었다. K는 벨트를 뺏어 집어 던지곤 고함을 쳐 다른 병사들을 돌려보냈다.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K는 한참동안 신병을 노려보더니 멱살을 잡아 소대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K가 신병을 데리고 간 곳은 소대지붕으로 연결된 계단이었다.

“올라가.”

나는 혹시라도 K가 신병을 패기라도 할까봐 같이 올라갔다. 지붕에 서니 넓게 펼쳐진 비행장활주로와 그 활주로를 에워싸고 있는 철조망이 보였다.

“…봐라.”

K는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병의 머리를 치켜들었다.

“뭐가 보이냐.”

“철망이요.”

“철망 위로 뭐가 보이냐.”

K의 그 말에 나도 철망 위를 바라보았다. 철망 위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해 아래에는 멀리광주 시내가 보였다. 처음 알았다. 소대 지붕에서 이렇게 먼 곳 까지 보이는지. 철망만 보고살았을 때는 몰랐는데 조금만 고개를 드니 철망 너머에는 도시가, 그리고 하늘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신병도 나와 같은 것을 본 모양이었다.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 날 석양이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소대 지붕에 앉아 있었다. 젠장. 맨날 일하는 건 난데. 이럴 때 폼 잡는건 K네.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날만큼은 K가 달라보였다.

그 때와 같은 석양이고 같은 하늘이다. 새삼 화가 났다. 죽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K. 아마 지금쯤이면 저 세상에서 나를 보며 골려먹는 표정을 하고 있겠지. 내가 대대장한테 쪼이고있는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겠지.

그 때, K의 아들이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종이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 *

“이 주소로 가보세요.”

K의 아내가 살고 있다는 주소였다. 전라남도 완도군… 으로 시작하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입력하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이지 K 때문에 별 데를 다 가보는구나. 나는 소대로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 K가 아프다는 연락을 주었던 병장이 받는다. 그에게 오늘 안으로 는 못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K가 문을 부수고 꺼내온 그 신병이 이제는 병장이 되었다. 자기를도와준 K의 죽음에도 별 동요가 없는 그 녀석에게 괜히 화가 났다.

광주에서 완도로 가는 2차선 국도.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12월의 이른 어둠이 완도로 향하는 국도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앞차의 불빛을 멍하게 보며 차를 모는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완도, 완도라. 그래,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소대장! 완도에 땅을 샀는데… 그린벨트라 땅 값이 안 올라!”

K는 전역하면 완도에서 살 거라 했었다. 그는 한참이나 노후 계획을 떠든 뒤 킬킬거리며 말했다. “전역하면 한 번 놀러와, 배 태워줄게.”

“내가 전역하고 거길 왜 갑니까?”

짜증스럽게 답했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완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 시골 마을의 어둠을 뚫고 K의 부인이살고 있다는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마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히 나를 맞이했다. 아마 아들로부터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내 소개를 하려 입을 떼자, 그녀는 나에게 이미익히 들어 알고 있다 대답했다. 의외였다. K를 통해 나에 대해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를방안으로 들이고 차를 내주었다. 차를 마시며 그녀가 들려주는 K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 해 전. K가 자기를 찾아왔었다고. 그리고 오랜만에 생기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한다.

“둘째랑 똑 닮은 애가 소대장으로 왔어.”

둘째라. 내가 알기로 K의 아들은 한 명이다.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둘째요?”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전. K의 둘째 아들이 군에 입대했었다. 아빠를 유독 따르던 둘째는 직업 군인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집에 통보가 왔다. 아들이 부대에서 자살을 했다고. K는 절대그럴 리가 없다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둘째가 자살했다는 그 현장은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부대는 시체를 인수하라고만 했다. 그들은 K에게 자살이라고 적힌 사망진단서를 내밀었다. K는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끗발 있는 장군도 아니었고 수사권이 있는 형사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였을 뿐이었다. 자신이 평생속했던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K. 그는 절대 자살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군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 싸움은 길고 힘들었다. K는 점점 술에 찌들어갔다. 주사가 심해졌다. 결국 견디다 못한 K의 아내가 서명을 해버렸다. 더 이상 버텼다가는 남편까지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K는 그런 아내를 원망했다. 술에 취해 아내를 때렸다. 맏아들은 엄마를 데리고 도망갔다.

그렇게 K는 외골수가 되어갔다. 부대에서도 고립되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끊어버리고 스스로를 작은 소대에 가두었다. 그렇게 지낸지가 10년. 그는 어느 새 고집불통의 고참 원사가 되어있었다.

그랬던 그가 몇 해 전- 아마도 내가 부임했던 그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둘째랑 똑 닮은 녀석이 새로 왔다고. 그리고 그 녀석이 아버지가 없이 자란 것 같다고. 그래, K는 나의 아버지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 들어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를 낡은 창고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K가 말했던 작은 배가 있었다. 나는 그날 밤늦게까지 그 배를 한참이나 만져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그녀와 함께 검은 그랜저를 타고 광주로 올라왔다. 상주가 되어 K의 장례식을 치렀다. 나는 직접 사진관으로 가 K의 영정 사진을 뽑았다. 상가는 썰렁했다. 중대장이 대대장을 모시고 도착했다. 괜히 머쓱해 하는 중대장을 자리에 앉히고 나는 한참 동안 K를 바라보았다.

일도 안하고 만날 놀던 K. 은퇴하면 자격증 따서 농약집을 열겠다던 K. 내가 속상해 하는걸 알고 일부러 회식 자리에 찾아와 중대장에게 쌍욕을 해준 K. 취업박람회에 보내주기 위해손가락이 안 펴져도 내색 않던 K. 내가 힘들 때마다 우울할 때마다 장난을 치고 말을 걸던 K.

그리고 나를 볼 때 마다 먼저 간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을 K.

3일장이 끝났다. 나는 K의 아들에게 나머지 절차를 맡기고 소대로 복귀하기로 했다. 발인을떠나기 전, 부인은 고인이 생전에 근무했던 소대 앞으로 영구차가 지날 수 있는지 부탁했다. 나는 대대장을 찾아가 부인의 부탁을 전했다. 고민하던 대대장은 비행단에 부정 탄다며 거절했다. 나는 임관 후 처음으로 대대장에게 대들었다. 말리던 중대장에게도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나의 지랄에 놀란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소대로 돌아왔다.

결국 K를 태운 영구차가 부대 밖을 한 바퀴 돌고 떠날 때- 나는 소대 지붕으로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철조망 위로는 새벽해가 올라오고 있었고 그 아래로 영구차는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차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동안 K를 향해 경례를 하였다.

‘잘 가요 K. 잘 가요, 나의 나이 많은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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